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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일보 [함인희의세상보기] 학교가 정말 가고픈 아이들
    시사 2020. 8. 6. 13:11

     

    어른들 성적에만 관심 두지만

    아이들 학교생활의 재미 원해

    코로나 틈타 사교육 더욱 기승

    가을엔 아이들 소망 이뤄지길

     

    학교에서 제일 재미있는 시간은? 이 난센스 퀴즈의 정답은 ‘쉬는 시간’이다. 밤낮없이 수업 준비에 여념이 없는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다소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의 진솔한 속내가 담겨 있음을 숨기기 어려울 것 같다.

     

    ‘학교 매일매일 안 갔는데 벌써 방학이래요.’ 지난 주 방학에 들어간 초등학교 4학년 손주 녀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1주일에 한 번 목요일마다 퐁당퐁당 등교를 하다 보니 한 학기 동안 학교 간 날이 열 손가락도 안 된단다. ‘학교 안 가니 좋으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힘차게 흔든다. 새 학년 올라가서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싶었고, 친구들과 재미나게 놀고 싶기도 했고, 맛있는 학교 급식도 매일 먹고 싶었다고 했다. ‘공부는 별로 재미없지만(!) 그래도 교실에서 선생님이 직접 설명해주실 때가 더 좋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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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한 달이면 1주일만 등교하고 나머지 3주는 온라인 수업을 했던 중학교 3학년 손녀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온라인 수업은 열심히 듣는 사람 별로 없을걸요. 선생님이 출석 부를 때만 카메라 켜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예요. 집중도 안 되고 재미도 없어요. 정말 학교 다니고 싶다고요! 중2 때는 수행평가 열심히 해서 어느 정도 커버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시험점수 하나만 가지고 성적을 낸다고 하니 엄청 부담스러워요’라 했다.

     

    대학입시 일정에 쫓기어 매일 등교를 했던 고3 수험생 손주 녀석의 상황도 궁금해 직접 의견을 들어보았다. ‘학교에 갈 수 있다고 해서 좋았는데 처음 학교 가던 날 딱 하루만 좋았단’다. 코로나19 때문에 친구들 사이의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친구들과 장난도 못 치고 밀린 이야기도 못 나누고 급식 시간에도 각자 떨어져 밥 먹고 하다 보니 화장실만 북적북적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19 덕분에 뜻밖의 수확을 얻은 것 같다. 초·중·고등학교를 불문하고 ‘진짜 학교에 정말 가고 싶어 하는 우리 아이들 마음’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른들의 일차적 관심은 학생들을 일렬로 줄 세우는 성적에 쏠려 있지만, 정작 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찾는 재미와 의미는 의외로 다양하기도 하고 다채롭기도 하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게 된다.

     

    와중에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회성을 키울 것이요, 또 누군가는 양보의 미덕과 희생의 가치를 배우게 될 것이다. 굳이 성적이 아니어도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키워나가는 주인공도 있을 것이요, 남다른 재능을 친구들로부터 인정받는 행운아도 물론 있을 것이다. 점심 도시락의 추억을 간직한 세대로서는 학교 급식도 그에 못지않게 풍성한 기억의 터전이 되고 있는 듯하여 마음이 한결 놓이기도 한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슬며시 불편해온다. 최근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떠돌던 괴담(?) 탓인 것 같다. 코로나19로 학교 등교 일정이 차일피일 미루어지는 동안, 일부에서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니 차라리 잘 됐다. 이 참에 오히려 사교육에 전념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며 표정관리에 들어갔다지 않던가. 객관적 데이터로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이제 학교 성적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확연해지겠구나 우려가 고개를 들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여곡절 끝에 치른 전국 규모의 모의고사에서 중위권이 사라지고 성적 양극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기사가 떴다. 소수의 상위권에 다수의 하위권이 포진하면서 중위권이 눈에 띄게 엷어졌다는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이 소식 앞에서 상위권 학생의 학부모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테지만, 보통의 학생이라면 친구들과 더불어 학교 교실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때 성적 또한 정상분포 곡선을 그린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다수의 학생들에겐 학교가 정말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입증해낸 결과 아니겠는지.

     

    사교육 자체에 대한 경험도 부모의 시각과 아이들 시각 사이엔 간극이 존재한다. 일명 ‘대치동 키드’들이 자신들의 사교육 경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심층인터뷰를 진행한 자리에서 나온 고백 중 하나다. ‘우리 엄마는 사교육을 특효약(特效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약값이 비쌀수록 효과가 더욱 좋다고 믿는 것처럼이요. 그래서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계속 비싼 사교육으로 대체했어요. 저는 왜 성적이 떨어졌는지 알고 있지만 혼자 책임지는 것이 싫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다’는 것이다.

     

    이제 초·중·고교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은 쉬어가는 기간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학교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 아이들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가을학기가 시작되길 기대해본다. 진짜 학교에 정말 가고 싶어 했던 아이들 소망이 하나 둘 이루어지는 가을학기 또한 희망해본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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