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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레 [왜냐면] ‘교육개혁’ 논쟁 2라운드: 연구를 위한 연구, 그만하자 / 김종영
    시사 2020. 8. 14. 16:22

    김종영|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더 생각을 해야 한다. 왜 한국은 ‘교육지옥’이고 독일은 아닌가? 연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 질문이다. 질문에 따라 연구 수행과 답의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최성수 교수의 반론에서 독일 교육과 한국 교육의 장단점이 있다는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 국민들과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왜 선진국들 중 한국 학생들과 부모들만 교육지옥에서 사느냐이다.

     

    광주과학기술원 김희삼 교수의 한·중·미·일 4개국 비교연구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 중 고등학교를 전쟁터라고 말한 학생이 80.8%나 되었다. 반면 중국 학생은 41.0%, 미국 학생은 40.4%, 일본 학생은 13.8%였다. 김 교수는 또한 한국 학생들이 과제를 할 때 협력하지 않는 가장 이기적인 학생들이라는 것을 통계로 보여주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시민’이 아니라 ‘전사’를 기른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한국 교육이 정말 지옥이라는 것이다. 독일 출신의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씨는 “당신의 고등학교 생활은 전쟁터, 시장, 광장 중 어느 것이었느냐”는 질문에 “파티”라고 대답했다.최성수 교수의 말대로 대학개혁은 데이터에 기반하여 이루어져야 할까? 역사상 최고의 대학개혁 중 하나로 평가받는 캘리포니아 대학 마스터플랜은 대학 입학생의 증가, 대학의 기능분화에 대한 구성원 간의 합의, 대학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결합된 정치적 타협책이었다. 68혁명 이후 파리 대학의 개혁과 독일 대학의 개혁도 마찬가지다. 곧 최 교수가 주장하는 근거기반 정책결정 패러다임은 ‘교육정책의 사회적 구성’을 파악하지 못한 왜곡된 과학주의다. 정책은 과학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과학적 요소들에 의한 공동구성의 결과물이다.최 교수는 교육개혁을 하려면 “자료와 근거의 축적”이 있어야 하며 이는 “과학의 영역”이기 때문에 연구를 더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얼마만큼의 데이터를 모아야 한국 교육이 개혁될까? 과학기술학에서는 ‘데이터의 비결정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데이터를 무한정 모은다고 하더라도 알고 싶은 현상에 대한 관점과 이론이 없다면 그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즉 과학은 현실, 이론, 데이터의 상호안정화(interactive stabilization)이지 데이터의 무한수집이 아니다. 최 교수는 교육지옥이라는 ‘현실’이 아니라 데이터가 제공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평균’을 본다. 정녕 ‘말이 되는’ 과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물신주의라는 ‘사상누각’에서 내려와 학교라는 ‘교육지옥’에 발을 내디뎌야 한다. 우리가 연구를 덜 해서 한국 교육문제가 풀리지 않는가? 한국 교육에 대한 자료와 근거는 흘러넘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료와 근거의 축적이 아니라 ‘왜 한국만 교육지옥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집요한 탐구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쓸모 있고 창의적인 연구들이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교육지옥에서 벗어나길 원하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해 연구를 위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물음에 응답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과학자의 자세다.사회과학자는 단지 연구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고통과 아픔을 치료하는 ‘의사’이기도 하다. 국민들은 암덩어리인 한국 교육을 고치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김누리 교수 등에게서 발견했다. 이것은 ‘구호’나 ‘수사’가 아니라 ‘아픈 외침’이다. 이러한 외침의 목적은 학교라는 전쟁터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는 불행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것이지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아프다, 고로 나도 아프다.’ 이것이 다른 연구자들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왜 김누리 교수의 주장이 한국 교육의 희망으로 간주되는가? 국민들은 알고 있고 우리 연구자들만 모른다. 따라서 우리가 더 생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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